Layering: 오늘의 날씨는 세네 겹입니다

2022. 5. 19 – 6.11. 보안아트스페이스2
민백, 전지홍, 정다정

김정아


서로의 거리감과 겹침의 지점을 감각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탐구는 시작되었다. 하나의 중심으로 합쳐지지 않지만 분명한 공통 지대를 공유한다는 지각은 겹겹이 존재하는 무언가를 상상하도록 만들었다.

전시 《Layering: 오늘의 날씨는 세네 겹입니다》는 우리 즉 동시대 청년예술가들의 관계 맺기를 레이어(layer) 개념으로 고찰하고, 레이어 표현기법을 이용한 날씨지도의 형상과 속성을 빌려 그 관계성 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룹 사면관측소의 기획자와 작가는 그들의 관계 혹은 작품론이 하나의 맥락으로 종합되기 보다는 다양한 겹침의 지점을 갖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각자의 거리감을 중요하게 인식 하는데, 사면관측소의 관계 맺기는 거리감을 적절히 정의하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함께 합을 맞추 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룹이 지향하는 이러한 관계성은 동시대 청년예술가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할 때 주요하게 작동하는 방식으로, 레이어 개념의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레이어(layer)는 우리말로 ‘표면에 쌓인 것의 층’, ‘겹겹의 층’, ‘층위’, ‘계층’, ‘막’과 같이 번역되며, 하나의 물체가 여러 개의 논리적인 객체들로 구성된 경우 이러한 각각의 객체를 하나의 레이어라고 정의한다. 레이어는 물리적이거나 개념적으로 겹겹이 쌓이는, 즉 중첩되는 속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전 체 또는 부분적으로 투명할 경우 각각의 레이어가 직접적으로 맞닿지 않아도 특정 시점에서 각 레이어 에 담긴 이미지 혹은 정보가 투과되어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또한 물리적 혹은 비물리적 공간에 배치됨으로써 우리의 감각적 경험을 이끌어낸다. 전시는 이러한 특징과 유사한 동시대 청년예술가들의 관계 맺기 방식을 레이어링layering이라고 지칭하고, 전시하는 행위 자체가 레이어링이 되기를 추구한다.

날씨지도*는 사면관측소의 레이어링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전시는 날씨지도의 어법을 주된 방법으로 사용한다. 날씨지도는 레이어 기법을 사용해 다층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이미지이자 민백, 전지홍, 정다정의 작품을 관통하는 속성을 함축한 대상이다. 날씨지도는 단순히 날씨 그 자체 는 아니며, 일반적인 지도와도 다르다. 땅이라는 단단한 실제를 토대로 삼지만, 그 위로 덧입혀지는 관 측값 이미지가 매 순간 형상을 달리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특히 기온이나 강수, 풍속, 풍향 등의 관측 대상은 특정한 형과 색으로 구현되어 보는 사람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고, 특정한 기억과 경험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속성과 시각적 특징은 민백, 전지홍, 정다정 사이의 겹침의 지점을 암시한다.

더 나아가 날씨지도의 작동 방식은 사면관측소의 기획자와 작가가 4개월 간 진행한 문답으로 확장 되어 입구에 자리잡은 리딩 테이블을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된다. 문답의 글을 다층의 겹으로 나누어 각 각의 글을 독립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일정한 맥락 안에 위치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특히 물리적으 로 움직이는 글은 날씨 지도를 보는 사용자의 행위적인 측면과 연결된다. 날씨지도는 동일한 지대 위의 여러 관측값을 반영하는데, 이때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관측값이 담긴 레이어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함 으로써 시각화 될 부분을 정할 수 있다. 전시는 리딩 테이블을 통해 작가라는 레이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성화 혹은 비활성화하며 민백, 전지홍, 정다정의 레이어링을 물질적으로 감각하기를 제안한다.

민백은 개인을 관통하는 범 신체적 규모의 흐름을 감각하며 그것의 비선형적이고 횡단적인 움직임 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확한 형체도 없이 이상하리만큼 해상도가 뚜렷한 얼룩을 상기하고 이를 부유하는 듯한 표면과 뚝뚝 끊어지는 파편적 흔적으로 나타낸다. 작가는 땅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얼 룩이 일렁이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내 구름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늘과 땅, 천장과 바닥 이라는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을 느슨하게 잇는 얼룩은 거대한 인과관계를 상상하도록 만들었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경계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넘나들었을까’ 하는 반추로 이어졌다. 민백의 회화는 불안정하 지만 명확하게 작동하는 조건을 감각하는공간으로써 우리와 마주한다. 깊이감을 알 수 없이 뒤섞여 있는 다층의 색과 시선의 균열을 일으키며 충돌하는 회화적 파편들은 연결된 채 움직이는 무언가를 느끼도록 한다.

전지홍은 유랑하는 행위를 통해 개인의 서사와 장소의 서사를 연결 짓고, 이를 지도로 표현한다. 길을 걷고, 기록을 남기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작업 과정은 장소를 답사하며 느낀 신체의 감각을 구현하는 방법이자 자신의 궤적을 되짚어가는 방법이다. 이번 전시 작품은 천문학자 외삼촌의 자리를 복원하기 위해 3년 전 소백산 천문대에 올랐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작가는 과거에 갑작스레 가족들의 곁을 떠난 천문학자 외삼촌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수많은 별과 마주한 순간을 떠올린다. 작가는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옮기던 발걸음의 간격을 감각하며 외삼촌의 자리와 자신의 자리, 그 사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를 전시장 안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으로, 더 나아가 민백과 정다정과의 간격으로 확장한다.

정다정은 일상의 사건과 경험에서 포착한 인상적인 풍경을 입체적인 장면(scene)으로 제작한다. 그의 작업은 대상을 먼 거리와 높은 위치에서 조망하듯 바라보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와연결된다. 이번 전시에서 동일한 공간이 주변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감각되는 상황에 주목한다. 작가는 똑같은 터널을 한낮과 한밤 중에 통과하면서 터널 안이 주변의 밝은 빛 때문에 어둡고, 주변의 어두움 때문에 환하던 생경한 경험을 한다. 진입하기 전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에서의 경험은 낮과 밤 사이의 시간 변화가 유발하는 서로 다른 감각과 기억으로 연결된다. 이는 추상적인 풍경으로 옮겨져 민백과 전지홍 사이에 조형적으로 자리잡는다.

예술인들의 창작은 일상과 생업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사람들은 대개 그 둘을 분리해야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예술인들은 그 경계를 분리하지 않는다/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계에서 다른 작가 혹은 기획자와의 만남을 온전히 사적인 또는 직업적인 만남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고민을 토로하며 예술계에서 형성할 수 있는 대안적 인간관계를 그려보던 중, 단순한 이끌림으로 모인 민 백, 전지홍, 정다정 그리고 김정아의 관계 자체가 우리가 찾고 있던 대안적 관계임을 깨닫는다. 특정 시점에서 애매하게 얽혀있는 우리는 하나로 뚜렷하게 귀결되기보다는,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은 상태를 잠재적 가능성으로 제안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라는 명칭으로 층층이 쌓인 레이어가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는지 모색하는 여정의 첫 번째 장이 되어줄 것이다.


*기상청 날씨누리 참조. https://www.weather.go.kr/wgis-nuri/html/ma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