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정 개인전 《장면 SCENE》 리뷰
“섞고 바르고 엮으며 흐트러트리는 장면 조각”


조각가 손희민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전시공간 ‘레인보우큐브’에서 정다정 작가의 첫 개인전 《장면 SCENE》이 개최되었다. 올 초여름,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여러 에스키스와 마게트, 그리고 전시공간에 대한 구상을 보여주며, 전시공간을 하나의 무대로 그려보겠다고 했다. 방이라는 집의 구조가 전시공간의 구획을 나누고 있는 특성을 활용하여, 어느 방은 대기실이 될 것이고, 어느 방은 분장실이 될 것이라 상상했다. 친구, 동료와 대안적 가정처럼 살아가는 그에게 첫 개인전은 그러한 자신의 삶을 공간과 작업을 통해 연동하고 풀이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6인용 식탁보다 큰 〈장면000-풍명속풍경속풍경〉(2024) 작품이 손님을 맞이한다. 마치, 빈 응접실에 놓인 커다란 쇼파처럼, 혹은 배우가 없는 무대처럼, 누군가가 초대되었지만, 아직 해프닝 일어나지 않은 공간의 감각을 상기한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단으로 구성된 층이 내부로 들어가면서, 각각의 층과 면, 구석에서, 작은 오브제들의 놓임과 작가의 손길과 마티에르의 흔적이 보인다. 이 오브제들과 마티에르는 서로 작지만 수다스럽게 떠들기 시작한다. 관객은 그들의 소리를 눈을 통해 쫓아가고, 이제 그곳의 해프닝이 시작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장면000-풍명속풍경속풍경〉(2024)은 자신의 무대를 함축적으로 담아놓은 도면이자, 지도이다. 무릎보다 낮게 설치된 작품을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단번에 정원을 그려놓은 이집트 벽화, 〈네바문의 정원〉(기원전 1400년경, Thebes의 고분벽화, 런던 대영박물관)이 떠올랐다. 이집트 미술은 보이는 그대로를 옮기는 것보다, 인식으로서의 도상이었다. 화가보다 지도 제작자였고, 주어진 순간에 볼 수 있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나 장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에 따라 사물이나 사람의 크기와 형태가 달라졌다. 작가는 작품에서, 삶에서 수집한 장면을 자신의 의미에 따라 ‘섞고 바르고 엮고 흐트러트린’ 행위를 반복한다. 그는 조각가보다 장면을 관계적으로 만들어가는, 연출자였다.
   그가 조각을 경유하며 자신의 장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방법적 특성이 보인다. 〈장면001〉(2024)나, 〈장면 003〉(2024)를 보면 그는 ‘부서지는 조각을 엮거나’, ‘연약한 재료(가 지닌 필멸의 파손)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갈라지고 깨질 수밖에 없는 재료가 만들어내는 우연을 해프닝으로 삼아 그 자리에서부터 손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한편, 〈대기실_등장인물〉(2024)나 〈DUST 12-주인공〉(2024)를 보면 그는 사람의 모습을 사물로써 장면화하기도 하고, 사물의 모습을 보고 조각으로써 의인화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이 있는 상태로서의 장면, 혹은 없는 상태로서의 장면, 그러나 존재는 늘 함께하는 어떤 장면, 그런 지점을 엮어가는 듯하다.
   정다정 작가의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눈이 바쁘다. 작은 오브제와 함께 그가 ‘섞고 바르고 엮으며 흐트러트린’ 이야기들을 쫓아가다가 장면 밖으로 나와 전체의 느낌을 보게 되기도 하고, 다시 그 디테일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풍경을 바라볼 때처럼 시선은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한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자신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본인이 다루는 재료와 개인적인 서사의 연결성, 연약한 재료와 납작한 형태, 자주 사용하는 색감의 매체적 특성 등. 줌인 상태로서 디테일을 생각하는 듯 보였다. 나는 다정의 행보와 작업을 지켜보며, 작가 정다정에 대해 줌아웃을 해보았다. 다정은 장면과 조각을 매개로 관계를 풀어가는 작가가 아닐까. 빈 응접실처럼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가 된, 깨지고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그러나 이를 다시 만들어가는, 혹은 중요도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달라지는, 그런 요소들을 지니고 사람들과 섞이고 맞닿고 엮여있는, 정다정 관계와 장면 그리고 조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