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jeong Jeong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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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2026/서문/김세연
이브닝 EVENING


2024/비평/김명진
정다정의 세계 만들기


2024/리뷰/손희민
섞고 바르고 엮으며 흐트러트리는 장면 조각


2024/서문/김정아
정다정 개인전 《장면 SCENE》



2023/서문/이준형
사루비아 <Studio Project 3_정다정×함진>


2023/서문/김태희
바다를 고이 접어 간직할 수 있다면



2022/리뷰/이가린
《Layering: 오늘의 날씨는 세네 겹입니다》


2022/서문/김정아
《Layering: 오늘의 날씨는 세네 겹입니다》




이브닝 𝘌𝘝𝘌𝘕𝘐𝘕𝘎

2026.01.07. - 01.25.
오온
김동섭, 김예령, 정다정

김세연


그리하여 우리와 연관한 장면을 만들었다.

때로는 현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계약 조항으로 세워진 건축처럼 느껴진다. 내가 맺은 계약은 아닐 것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약속일까? 반듯한 그림체로 정리된 선들. 이분화된 이름들. 그 외 날 서 있던 돌기와 어떤 외침은 아무도 모르게 유실되었다.

르 귄은 세상을 쪼개진 두 갈래로 재현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쪼개진 두 갈래는 각자 비대칭적으로 가치를 얻는다고 한다. 이를 배치의 행위로 이해해 보면, 배치는 특정한 질서와 관계에 대상을 위치 짓는 움직임에 가깝다. 어떤 것은 의미를 얻어 불멸하고, 어떤 것은 주목받지 못한 채 바다로 가라앉는다. 배치는 대상이 존재하기까지의 역사를 잘라내어 단절하게 만든다. 그리고 떼어낸 대상과 그 대상이 자라온 지면은 서로에게서 소외된다. 이처럼 배치는 차이를 지우고, 균질화한다. 평평한 표면을 만들기 위해 골고루 누르는 과정에는 언제나 많은 것들이 배제된다. 이동의 궤적, 예측하지 못한 파열, 부풀어 오르는 꿈, 튀어나온 신체, 지우개의 똥 같은. 그 결과 겉면은 정돈되는 동시에 축소되고, 불편하리만큼 선명한 세계가 완성된다. 문제는 이렇게 말끔히 정제된 세계에는 관여하는 우리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를 주조하는 틀이 만들어지는 영역 바깥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거죽은 건조한 세상을 메아리친다.

《이브닝 EVENING》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펜스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고른(even)’의 현재진행형 형태를 제목으로 삼은 전시는 ‘고르게’라는 움직임을 관여의 한 과정으로 취한다. 사전적으로는 고른, 변하지 않는 그리고 선택한다는 의미와도 교차하는 이 단어는 깎여나간 지형을 비유한다. 고른 상태에는 낡은 것을 누르거나 위치를 옮기면서 재배치하는 단계가 함께 작동한다. 전시의 세 명은 이 움직임에서 폭넓은 질감을 길어 올려 의도된 계산 못지않은 즉흥적인 서사를 풀어낸다.

오온에는 이전에 없던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방심하면 작품을 놓쳐버린다. 이 지역적인 구조물은 김동섭의 작업으로, 유리라는 벽을 특히 의식하며 만든 문이다. <움직이는 가벽>(2025)은 이름 그대로 이동할 수 있는 벽으로, 지금은 없어진 출입문의 흔적에서 출발한다. 바닥에 남아 있는 힌지에 커스텀한 곡선형의 문을 설치하여 방문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의 폭을 제한(제안)하는 구조물을 만들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문을 밀고 당기면 열리는 각도만큼 내외부의 풍경이 눈에 담기며 건물의 경험은 다층적으로 형성된다. 우리는 몸을 옮기며 끊임없이 공간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김동섭은 하나의 재료를 다른 물성으로 둔갑시키거나 기존의 맥락과 쓰임을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공간에 개입해 왔다. 작업은 치밀한 계획보다는 공간의 구조와 질감, 현장에서 발생하는 우연에 반응하며 진행되고, 그 즉흥성이 작업의 스케일과 형태를 결정한다. 또 하나 새로이 덧대진 구조물은 전시장 천장에서 시작되는 <수장고>(2025)이다. 오온의 위층까지 연결된 개구부를 단서로, 4개의 유리면 기둥을 세워 층간 이동을 상상하게 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불투명한 기둥을 세워 한눈에 담기는 시야를 한 차례 끊어낸다. 새로 생긴 잉여(이자 유의미한) 공간 안에는 세 사람-김동섭, 김예령, 정다정-의 작업의 일부가 담겨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 역할을 한다-작품을 제작하는 데 사용한 도구, 미래에 쓰일지도 모르는 자재, 작품의 일부 등 과정의 산물이 담긴다. 이러한 환경에서 공간과 작품은 서로가 필요해졌다. 임시적으로 맺어지는 이 관계를 통해 구조물은 장소특정적으로 작동한다.

김예령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순과 오늘날의 잔상을 지판화(Collagraphy) 기법으로 여러 물질을 겹치어 납작한 레이어의 화면을 구성한다. 여러 본질 가운데 점차 흐릿해지는 본질을 되짚으며, 명쾌하게 파악되지 않는 세계를 만든다. 김예령이 매일 하는 지판화는 보기보다 삶과 비슷하다. 지판화는 원판을 다회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에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생산하지 못한다. 통제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매체지만 지판화는 계획한 대로 구현되지 않으며, 우연은 피할 수 없이 발생한다. 김예령은 이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를 오히려 환대하고, 실패한 회화적 표현으로 적극 받아들인다. 이 태도는 구체적인 현상을 오히려 추상적으로 번역한 이미지와 나란히 놓인다.

질문은 언제나 하나의 답으로 닫히지 않는다. 꼬리를 물고 쌓이거나 영영 걷히지 않는 안개처럼 머문다. <자리와 자리: 질문들은 적재적소에 제기되고 있는가>(2025)는 ‘질문들은 적재적소에 제기되고 있는가’라는 문장을 점자와 다섯 겹의 레이어로 중첩하여 적재적소라는 질문이 놓인 자리와 관계를 구조적으로 다룬 작업이다. 하나의 원판에서 파생된 조각은 모양에 따라 배치되는 맥락이 달라진다. 의심 없이 수용되는 질문과 가장자리로 밀려나 희미해진 질문을 대비시키며, 당연하게 여겼던 질문 간의 위계를 가시화한다. 그렇다면 이미 자리를 차지한 질문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렇게 파고들다 보면, 열렬히 쫓고 있던 대상은 다시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번 작업은 주어진 본질과 질문의 방향을 되물으며, 누락된 감각을 불선명하게 찾아간다.

정다정은 석고 가루를 뭉쳐 땅을 조성하고, 그 위에 수집한 나뭇가지처럼 연약하고 잔여적인 것들을 쌓아 일상에서 수집한 장면을 재배치하여 관계의 풍경을 만든다. 작업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서진 부분 역시 소각하지 않고 땅에 남겨두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우연이 작업 속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투박하고, 잠정적이고, 부정확하고, 자잘하고, 사소한 기억이 덕지덕지 묻은 사적인 경관을 만든다. <Round and Round>(2025)은 자리를 더듬어 발견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주로 사용해 왔던 마른 꽃, 나무, 열매 이외에 작은 드로잉이 조각 위에 재료로 얹힌다. 이전 작업에서 드로잉은 에스키스로서 조각이 구현되는 전 단계였다. 반면 신작에서 연속적으로 그려지는 드로잉은 그 자체로 작업의 흐름이 되어 조각에 영향을 주고, 조각 사이에 다시 새로운 드로잉이 잇따르며 상호적인 관계로 확장된다. 조각 가운데 비어 있는 여백은 주변을 뱅뱅 도는 움직임 속에서만 인식된다. 결국 삶이 일어나는 장소는 중심이 아니라 맴돌기만 하는 주변이다. 무언가를 재배치한다는 것은 (잘못) 놓인 위치를 바로잡거나, 답을 찾는 행위가 아닌 관계를 조율하는 제스처에 가깝다. 그렇기에 배치된 제 자리는 완결될 수 없고, 정다정의 조각도 완료되지 않는다. 조각을 옮기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깨짐이 스며들고, 작업실로 돌아간 이후에도 드로잉은 거듭 덧입혀지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조각 곳곳에는 모닥불, 벤치, 굴, 샘, 다리 등 모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장소가 마련되어있다. 이러한 맥락은 전시장의 모든 조각과 맞닿는다. 의자는 누군가 떠난 흔적이자, 다음 누군가를 맞이할 자리이다. 실제 삶의 장면은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매끈하게 다듬어진 일상은 좀처럼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써버리는 사람. 이 전시는 고르게라는 움직임을 상상하며 우리 앞에 자리한 현실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관여하는 태도를 꺼내 보인다. 그것은 주어진 세계를 뒤집거나 액자 속 풍경처럼 고루 배치된 현실과 경합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단지 우리 쪽으로 당겨와 이름 붙여지지 않을 장면을 만드려 한다.